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기사 76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c1XSAn7YOA7YOA66W0IOupjeyXkCfripQg66y07JeH7J2EIOuCqOqyvOuCmD8g4pGh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75] '타타르 멍에'는 무엇을 남겼나? ②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서구화 흉내 내기, 뾰뜨르 개혁 [사진 = 뾰뜨르 대제] 서구화의 상징인 러시아의 뾰뜨르(피터)대제에게는 별명이 두 개 있다. ‘이발사 짜르(황제)’ 라는 별명이 그 하나고 '처형관 짜르'라는 별명이 다른 하나다. 이 두 별명은 뾰뜨르의 서구화 정책의 성격을 대변해주고 있다. [사진 = 수염 깎는 황제 뾰뜨르] 첫 번째 별명은 서구의 생활습관을 따르기 위해 직접 면도기를 들고 측근들의 턱수염을 깎아준 데서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란자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으로
2017-10-22 13:21:13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c0XSAn7YOA7YOA66W0IOupjeyXkCfripQg66y07JeH7J2EIOuCqOqyvOuCmD8g4pGg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74] '타타르 멍에'는 무엇을 남겼나? ①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몽골 지배가 남긴 마이너스 유산 ① [사진 = 모스크바 전사(戰士)] 이제 240년간에 걸친 몽골의 지배, 즉 ‘타타르의 멍에’가 러시아에 무엇을 남겨는 지 한번 짚어 보도록 하자. 이 부분은 조금 무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전문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러시아 말과 역사를 공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몽골의 역사와 러시아 역사를 함께 비교해 보면서 나름대로 느낀 부분을 기술해 보려고 한다. 몽골의 지배가 러시아에 남겨 놓은 흔적은 적지 않다. 그 대부분이 러시아인
2017-10-19 14:48:48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czXSDrrLTsl4fsnbQg66qo7Iqk7YGs67CU66W8IOyEseyepeyLnOy8sOuCmD8g4pGh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73] 무엇이 모스크바를 성장시켰나? ②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대공의 자리에 오른 이반 깔리따 [사진 = 모스크바 붉은 광장] 모스크바 공국의 공후들은 킵차크한국의 보호막 아래 영토를 계속 넓혀가면서 킵차크한국과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해 갔다. 특히 3대 공후인 이반 다닐로비치는 킵차크한국의 수도 사라이를 자주 방문해 칸과 그의 아내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바치고 칸을 능수능란하게 다룸으로써 자신과 모스크바 공국의 지위를 확고히 굳혀갔다. [사진 = 모스크바 개선문] 그는 주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을 킵차크한국에 충실히 받치는 한
2017-10-18 10:19:21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cyXSDrrLTsl4fsnbQg66qo7Iqk7YGs67CU66W8IOyEseyepeyLnOy8sOuCmD8g4pGgIA==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72] 무엇이 모스크바를 성장시켰나? ①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과녁판 같은 모스크바 중심가 [사진 = 모스크바 중심, 고리끼 거리] 모스크바의 중심부는 크렘린과 붉은 광장을 중앙에 두고 세 개의 환상(環狀)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또한 중앙에서 외곽으로 방사선형으로 도로가 뻗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모스크바 중심부는 마치 과녁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10월 혁명 후 모스크바의 재건이 가장 먼저 시작됐던 고리끼 거리는 붉은 광장에서 환상도로를 가로지르며 북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도로다. 과거 짜르(황제)의 사자가 말
2017-10-17 10:17:47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cxXSDrsJTtiKzripQg7Ja065a76rKMIOufrOyLnOyVhOulvCDthrXsuZjtlojrgpg/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71] 바투는 어떻게 러시아를 통치했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스키타이 옛 영토 차지한 몽골 [사진 = 바투 초상화] 몽골 연합군이 본토로 철수하면서 바투의 군대도 1243년 겨울, 볼가강 하류의 본영지로 돌아왔다. 러시아와 동유럽의 정벌 결과로 주치 일가의 울루스는 이제 거대한 영토를 소유하게 됐다. 러시아 공국들에 대한 종주권은 물론 킵차크와 볼가르 지역을 모두 통치지역으로 손에 넣게 됐다. [사진 = 볼가강] 이 지역은 흑해 북쪽의 초원지대에서부터 돈강, 볼가강 유역 그리고 카프카즈 일부지역까지 포괄하는 광활한 영토였다. 말하자면 고
2017-10-16 13:00:56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cwXSDrjIDsubjsnZgg7KO97J2M7J20IOyEuOqzhOyCrOyXkCDrr7jsuZwg7JiB7Zal7J2APw==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70] 대칸의 죽음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사진 = 13세기 러시아와 동유럽] 러시아 정벌을 마무리 지은 몽골의 연합군은 그 여세를 몰아 동유럽 쪽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벌과는 달리 동유럽 정벌은 한 차례 몰아친 거친 광풍이었다. ▶리그니츠 전투 대승 [사진 = 몽골군 동유럽 공격도] 동유럽으로 기수를 잡은 몽골 연합군은 두 개의 진로를 택했다. 하나는 폴란드, 다른 하나는 헝가리였다. 차가타이의 손자 바이다르와 카이두가 이끄는 별동대는 1241년 4월 리그니츠 평원 부근 왈슈타드라는 곳에서 폴란드와 독일기사단
2017-10-15 08:56:25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Y5XSAn7LSI7Yag7ZmU65CcIOufrOyLnOyVhCfripQg7KeE7Iuk7J246rCAPyA=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69] '초토화된 러시아'는 진실인가?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과연 초토화 됐던가? [사진 = 몽골군 러시아 정벌도(몽골 국립 박물관)] 러시아 연대기와 당시 러시아의 문학에 남겨진 몽골군의 러시아 정벌은 잔인의 극치를 이룰 정도로 철저히 파괴와 학살이 이어진 것으로 묘사돼 있다. 전쟁이란 그 것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살상과 파괴를 부산물로 남겨 놓는다. 그 정도에 따라 그 전쟁의 참혹함을 가늠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 측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몽골군의 러시아 정벌은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정벌이었다고 할만하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2017-10-14 18:30:47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Y4XSDriITqsIAg6rKo7Jq47JeQIOufrOyLnOyVhOulvCDsoJzslZXtlojrgpg/IOKRoQ==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68] 누가 겨울에 러시아를 제압했나? ②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철저히 파괴된 첫 상대 랴잔 [사진 = 바투군의 러시아 정벌] 몽골군이 루시로 들어서서 첫 번째로 마주친 상대는 북 볼가강 유역에 있는 랴잔(Ryazan) 공국이었다. 1237년 12월, 몽골의 푸른 군대는 혹한 속에 얼어붙은 볼가강을 이용해 랴잔공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 전통의 도시와의 첫 전투는 몽골군에게 어렵고 힘든 싸움이었다. 랴잔 공국은 몽골군의 공격으로 초토화되고 온 국토가 황폐화됐지만 바투군도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 랴잔의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시 방어에 참
2017-10-13 09:15:22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Y3XSDriITqsIAg6rKo7Jq47JeQIOufrOyLnOyVhOulvCDsoJzslZXtlojrgpg/IOKRoCA=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67] 누가 겨울에 러시아를 제압했나? ①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의미 축소된 타타르지배 [사진 = 몽골군, 러시아정벌도 (몽골 국립 박물관 소장)] 지금도 세계 강국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가 과거 240년 동안이나 몽골의 지배아래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세계사에서도 이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거기에는 다분히 서구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조명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더욱이 러시아 역사는 가급적 그 의미를 축소하거나 아예 무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많은 러시아의 역사
2017-10-12 10:56:08
W+uwsOyEneq3nOydmCDrjIDrqr3qs6gg7Iuc6rCE7Jes7ZaJLTY2XSDtloTrsoTqsbDripQg7Ja065SU7IScIOyZlOuCmD8g
[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66] 햄버거는 어디서 왔나?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소련 붕괴 1년 전 모스크바 방문 [사진 = 바실리 성당(붉은 광장)] 공산체제가 무너지기 1년 전 소련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고르바초프가 뻬레스트로이까(Перестройка:개혁)와 글라스노스찌Гласностъ:개방,공개)를 앞세워 개혁과 개방의 바람을 거세게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공산주의 국가로서는 최초로 인민대표자 회의, 국회의원을 처음으로 주민 직선을 통해 뽑는 때에 맞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소련의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모스크바에 들어갔다. 당시는 KBS 기자 신
2017-10-11 13:31:31
 

이 시각 많이 본 뉴스

더보기